사육신 성삼문

좋은 글/새겨 듣는 말과 글 2009. 12. 21. 22:37 posted by Mike Lee


  성삼문은 사육신중 한사람이다. 조선 4 임금 세종대왕의 뒤를 이은 문종 재위 2 만에 병사하자 아들 단종(端宗) 열두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단종을 보필하던 3정승을 죽이거나 귀양보내고 자기동생 안평대군도 강화도로 쫓아 죽인 정권을 장악한다. 이것이 계유정난이다.


수양대군의 기세에 몰린 단종이 재위 3년만에 왕위를 넘겨주자 수양대군은 임금이 된다. 같은 수양의 행위에 대해 집현전학사 성삼문과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하위지(河緯地),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등이 단종 복위와 반역파 숙청을 도모한다.


세조 6, 명나라 사신들을 접대하는 잔치가 궁궐에서 열리자 성삼문등은 기회에 일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같이 거사를 하기로 약속한 김질() 고발로 세조에게 잡혀 극형에 처해진다. 이일로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떨어져 영월에 귀양가서 죽는 비운의 역사가 시작된다.


성삼문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요동에 귀양와 있던 음운학자 황찬(黃瓚) 13번이나 만나러 다닐 정도로 열성적 학자였다. 그도 단종 복위에 앞장섰으나 발각돼 39세를 마지막으로 처형됐다.

성삼문이
거사실패로 잡혀 고문을 받을 세조가 묻는다. 거취를 분명히 하라고, 그러자 성삼문은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

라고 답해버린다. 세조는 죽기를 각오한 성삼문의 의지를 알게 됐다. 세조가 성삼문을 직접 심문할 때도 끝내 왕이라 부르지 않고 나으리 라고 불렀다. 세조가 다시 묻는다.“ 네가 나를 나으리라고 하니 그럼 내가 녹봉(급여) 먹었느냐그러자 성삼문은상왕(단종) 계시는데 어찌 내가 나으리의 신하인가. 당신이 녹은 하나도 먹지 않았으니 집을 수색해보라 했다. 세조가 명하여 집을 수색하니 즉위 첫날부터 받은 녹봉에 어느 받은 녹이라고 표시를 전부 그대로 보관돼 있었다. 이런 태도에 화가 세조는 쇠를 불에 달궈 단근질로 성삼문의 다리를 뚫고 팔을 지졌으나 쇠가 식었구나, 다시 달구어 오라 성삼문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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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을
마치고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가면서 한수의 시를 읊는다.

북소리 둥둥 목숨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지는 해는 서산을 넘네
저승으로 가는 길엔 주막도 없다는데
밤은 어느 집에서 쉬어 갈수 있을까

돌아보니 어린 딸이 울면서 따라온다.
성삼문은사내아이는 죽어도 너만은 살겠구나하면서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했다. 당시 역적들은 삼족을 멸하거나 남자들은 죽이고 여자들은 노비를 삼았기 때문이다. 성삼문은 이날 이개, 하위지, 유응부 등과 함께 처형됐다. 위의 글은 임기종이란 분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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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한 목사님의 설교를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이 분의 사진조차도 본적이 없을 때 이야기입니다. 무었이든 제대로 하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는지 목사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연상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성삼문입니다.

 

곧은 절개와 지조, 마음만 먹으면 한 순간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단호히 거절합니다. 여기서의 거절은 죽음입니다. 자기 혼자만의 죽임이 아닙니다. 삼족이 멸합니다. 삼족이란 아버지, 어머니, 부인식구 쪽을 말합니다. 감히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을 소개 하면서 이 분은 무슨일을 하며 참으로 성실하게---“ 하면 아 그러세요하며 가볍게 악수를 합니다. 그리고 말을 덧 붙입니다. “또한 이분이 저기 Downtown에 건물도 몇개 가지고 있고---“ 하면 악수하는데 강한 힘이 들어갑니다.

 

이것이 요즘 세상인 듯 합니다.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